이번 달에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연달아 읽었어요. 짧은 단편을 모은 미니픽션 <아라의 소설>을 시작으로 장편소설과 단편을 묶은 소설집을 오가며 읽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편은 <보건교사 안은영>, 소설집은 <목소리를 드릴게요>였어요.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매일 읽었어요. 어릴 적에 고전문학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따라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게 읽었던 해리포터 시리즈는 1편을 여러 번 읽는 고비를 넘기고 나자 완독할 수 있었어요.
스무 살이 넘어서는 소설을 읽는 일이 감정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몇 시간 내리 집중할 수 있었는데 소설은 아주 컨디션이 좋을 때만 읽을 수 있었어요. 소설을 즐겨읽는 친구들이 느끼는 기쁨이 무엇일지 늘 궁금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쉽게 읽혔어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을 때마다 완벽하게 도망칠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어요.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마음 속으로 그리며 제 감정의 퍼즐도 함께 맞추어졌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소설을 읽는 기쁨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폭력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폭력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공기처럼 주변을 떠도는 폭력성을 얼마나 당연하게 체화해 왔는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여러 권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친절'이라는 단어가 '타인을 대하는 정겨운 태도'를 넘어 폭력성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함으로 해석되었어요.
<보건교사 안은영> 속 은영은 친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엉뚱한 힘에 기반한 무력을 사용해 폭력성과 대척하는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은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무기력하게 성실히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은영의 조력자이자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문 선생님 인표와의 대화를 옮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