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단편 소설을 읽었어요. 문학상 수상집에서 서이제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독특한 소재가 현실적으로 풀려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이후 소설집을 찾아보게 되었고 <낮은 해상도로부터>에도 비슷한 색채가 느껴지는 작품이 실려있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된 사촌과 그의 팬이라고 밝히는 친구 사이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사촌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질투하는 인물의 이야기, 아역으로 데뷔한 유명 배우가 대중으로부터 잊혔다가 화석 발견 소식으로 다시금 회자되는 이야기 등 넓은 상상력의 스펙트럼 속에서 즐겁게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달에 소설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게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를 견딜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매혹되었다. 소설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를 견딜 줄 아는 것에 대해 최근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이 저주인지 능력인지 궁금했습니다. 쉽게 정의되지 않는 감정을 긴 호흡으로 묘사하는 단편 소설을 읽으며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에 더 빠져보고 싶었어요.
얼마 전 친구와 왜 소설을 읽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소설집을 읽을 때 아홉 편 정도의 단편 소설 중 여섯 편 정도 집중을 해서 읽곤 합니다. 나머지 세 편은 인물의 관계도 감정도 따라가기가 어려워 눈으로 활자만 따라가며 완독하곤 해요.
<낮은 해상도로부터>를 읽을 때는 세 편 정도 집중할 수 있었고 나머지 여섯 편은 끝까지 읽기만 했어요. 실험적인 형식의 소설이 많이 실려있었습니다. 시점과 시간 전개가 모호한 글을 읽으며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어떤 이야기였는지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되지 않는 소설을 읽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난해한 소설을 읽는 동안 제가 평소에 자주 느끼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를 견디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모호하고 불분명한 시간이 길어질 때면 고민을 얼른 털어버리고 가벼워지길 바라지만 정작 복잡한 문제에 직면할 때면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란에서 명확함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견디어 본 경험 자체를 얻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곤 합니다. 책을 읽어내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공허함과 홀가분함을 오가며 나의 경험이 이야기가 될 때까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