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어요. 만 이틀 정도의 여행이었는데 여행지에서 느낀 즐거움과 별개로 이 시간을 통해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어요. 정확하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주로 마음 속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경험을 자주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이었어요. 많은 것이 익숙한 한국에서 혼자 여행을 하는 것과 달리 완전한 타인이 된 듯한 외국에서 혼자 여행을 하는 것에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한국인 동료들과 워크숍 기간 동안 혹은 여행지에서 하루 종일 부대끼며 충전이 되는 기분을 느끼고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외로움을 감당하는 패턴을 몇 번 겪고선 내향인과 외향인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격은 유전적인 것이라 생각했는데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여기서 '이향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가끔은 내면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양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책을 통해 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물리적 세계에서 잘 다루어보자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비슷한 고민이 있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라미 카민스키 작가의 <이향인>
올초에 '이향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한, 외향인에도 내향인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흥미로웠어요. 그러던 중 이향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 책을 찾아 읽게 되었어요.
저는 본문을 읽기도 전에 책에 실린 이향인 테스트부터 해 보았어요. 이향인이라 분류되는 점수를 조금 넘더라고요. 책과 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어느 정도 이향인의 속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내부 집단에서도 완벽하게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분들이 책과 글의 세계에서 본인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오랜 세월 환자를 관찰하면서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구분지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다른 분류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향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내향인과 외향인의 중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아니라 이향인은 '공동체 지향인'의 반대말에 가깝습니다. 공동체가 가고자하는 방향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 이들의 존재가 사회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책과 관련한 유튜브를 찾다가 재미난 영상을 발견했어요. 자신이 가진 느낌을 위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런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 느낌은 있지만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가 혹은 2) 실제로 느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두 가지 갈래로 궁금증을 품어왔다고 해요. 최근 연구에서는 후자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관련 대화는 53:33초부터 시작돼요.
이향인은 자신의 내면에 깊은 닻을 내리고 그 닻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요. 내면 세계에서 많은 느낌을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향인이라는데는 크게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내면의 닻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데는 동의가 되었어요.
대신 저는 닻의 존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닻의 기능을 의심하는 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향인에 대해 이해해 보는 과정이 담긴 이 책이 도움이 되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느낌과 표현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영상을 통해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쓴 <느끼고 아는 존재>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물리적 세계와 내면 세계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 보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문학사의 고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강요하는 집단적 이념과 의견에서 완전히 벗어나 일상을 경험한 이향인만이 쓸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집단적 통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은 이향인에게 짜릿한 자유와 자율성을 안겨준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집단의 틀에 맞춰 형성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이해를 만들고 다시 바꿀 수 있다.
이향인의 목표는 소속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강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향인이 삶을 일 영역, 여가 영역, 가족 영역처럼 나눠 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내면 세계(어디에 있든 함께 존재하는)가 삶의 중심이다. 따라서 내면 세계와 맞지 않는 일터에서 이향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며 성장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