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지금의 해외 거주는 저의 두 번째 타지 생활이에요. 20대 중반에 대학원과 인턴 생활을 제천과 서울에서 했던 것을 제외하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부산에서 보냈습니다. 유년의 기억이 시작된 시점부터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았어요.
공간에 대한 이런 경험 덕분에 고향이라 생각되는 마음의 안식처가 존재합니다. 수능이 끝나고 틀어박혀 책을 읽었던 도서관이 여전히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있고 대학교 등하굣길에 탔던 버스를 취직 후 출퇴근 길에도 탔습니다. 네이버 지도가 알려주는 경로를 보지 않아도 주말에 등산을 다녀온 뒤 온천으로 유명한 목욕탕을 찾아갈 수 있었어요.
서울에서 처음으로 기숙사가 아닌 형태로 부모님 집을 나와 살아봤어요. 자취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혼자 살고 있던 친구 집에서 4개월간 함께 생활했습니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저와 다른 억양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기 위해 주변을 열심히 관찰했어요.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며 즐겁게 지내는 와중에 외로움이 몰려올 때가 있었습니다. 생활하는 반경 너머의 장소로 대화 주제가 집중될 때면 스스로가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 풍부한 장소 데이터가 저에게는 전무하다는 사실 앞에서 작아지곤 했어요. 이방인이 되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마주했습니다.
익숙한 곳에 대한 그리움은 물의 이미지로 재현되곤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면 제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부산에 돌아와 바닷가를 찾았을 때 그것이 안도감이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데 이상하지. 서울로 오고나서는 여름이랑 비를 기다린다.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 그럴 때 나는 겨우 숨을 쉬어.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 여기도 비 오는 곳이구나, 여기도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안도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까?"
책 <첫 여름, 완주>의 주인공 손열매는 여름에 내리는 비를 보며 안도감을 얻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라는 문장이 반가웠어요. 열매는 자신의 돈을 갚지 않고 사라진 친한 언니 고수미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고향인 '완주'를 찾습니다. 완주에서 여름을 보내며 여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완주를 떠납니다. 서울로 돌아온 열매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떠났던 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시끄럽고 더럽고 복잡하고 모두가 바쁜 그대로였다."
20대 중반의 타지 생활에서는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어요. 능숙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낯선 것에 빠르게 적응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첫 여름, 완주>를 읽으며 10년 전 감추기에 급급했던 당시의 조급함을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받아들여지지 못할거야, 라는 고립감과 함께 제 마음속 완주에 숨겨둔 감정이었어요.
볼리비아에서 벌써 6개월의 시간을 보냈어요. 여전히 많은 것이 낯섭니다. 낯선 곳으로 떠날 때면 품게 되는 변화와 성장이라는 기대를 저 역시도 갈망하고 있어요.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마다 그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서울에서 한강을 지날 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면서요. 부산도, 서울도, 이곳도 별다르기만 한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쯤 저의 여름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